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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FOLIO/OLD DIARY'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1.02 건축과 영화 _ 2009.5~2009.11

건축과 영화 ① - 건축가의 자존심

건축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

 

건축이 되어지기까지의 과정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장소를 만나고, 자본을 만나는 일련의 상황들을

풀어나가야 할 책임이 건축가에게 주어져 있음을 느꼈다. 

 

 

영화 마천루는 하워드 록이 자신의 방법으로 

건축가로서 지켜야 할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가는 과정을 보여준 것이리라.

 

물론 그 자존심이라는 것을 지켜가는 방법들은 다 다를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의 하워드 록은

그 모습 자체가 조금은 융통성에서 벗어난 자기고집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에서 비롯된

다소 위험해 보이는 발상으로 그 자존심을 지켜간 것으로 보여졌다.

이는 우리가 흔히 거장이라 일컫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여주던 모습(건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과 일치해 보였다.

 

사람들이 막장드라마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고 투영하여

대리만족과 희열을 느끼는 것과 일반으로

이 영화를 통해 어쩌면 일부 현실에서의 한계와 어려움에서 잠시 피해

하워드 록의 인생격정과 그 결과적인 해피엔딩에 만족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건축가로서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자기만의 방법을 

학교 교육에서, 선배의 선험적 경험과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때로는 이번과 같은 영화를 통해서 배워가는 것이 아닐까?

 

대구라는 땅에서 소외된 기회들을 접하고자 서울에 와서

찾아다니고, 듣고, 보고자 했던 작은 노력들이 

또 한번의 생각을 하게 해주고 또 하나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 같아

즐겁다. 그리고 또 다른 꿈을 꾸게한다...




건축과 영화 ② - LIFE & STORY

하나의 사건이 기록되어져 가는 과정과

시간의 흐름에 의해 구축되어져가는 결과물의 연속적인 시퀀스는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 안에는 삶이 있다.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있다.

 

다니엘 리베스킨트의 저서「낙천주의 예술가」에서 그려낸 이야기에서도,

노먼 포스터의 다큐「거킨 빌딩」에서 그려진 이야기에서도,

강병국 건축가 선생님의 요양소 「쌘뽈 요양원, 유치원」에서 그려진 이야기에서도

주인공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듣는다.

 

배우라는 직업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라 표현한 어느 배우의 말처럼

건축이라는 직업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고 이야기의 한 꼭지를 그려내는 일이다.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며 또한 그에 따르는 책임에 의해

성숙해간다.

 

건축가 문훈은 자신의 건축이

새로운 시도와 소위 기발하고 이색적 성향을 나타낸다고해서 

건축자체를 가볍게 여기거나 철없이 그 행위들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건축이라는 행위자체에 존재하는 책임이라는 의무에 의해

늘 고민하게 되고 성숙해 간다고 말한다. 

 

건축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다큐 주연이 요렇게 변했었음 진짜 끝내줬을텐데..ㅋ

쉬어가는 페이지.ㅋ

 





건축과 영화 ③ - Twins

나의 집 짓기

물리적인 집의 의미를 넘어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

내가 담기고 또한 나를 닮아가는

집이란 그릇과 물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

 

나의 집을 짓는 일에 있어서의 건축주가 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이야기를 담고

삶을 그려낸다는 것이리라.

 

 

건축을 공부하면서 꿈꾸는

나만의 언어와 방법으로 구축될 나의 집 짓기가

결코 먼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란 사실에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어

가슴 한 껏 부풀 수 있었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개인적으론 아버지의 집 짓기에 당연할 아들 건축주가 아닌

시공비용 절약차원에서 아버지께 고용된 잡부가 되어서

싸게 집짓기에 동원된 기억이 있어서 이 또한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한다.

이제 건축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견주어 볼 때

아버진 참으로 탁월한(?) 방법으로 말도 안되게 집을 싸게 지으셨던 것 같다.

다행히 설계비에 돈을 들이시고 시공을 손수 사람을 조달(?)하고 지으셔서

개인적으로 깨인 건축주였던 것 같긴 하다.ㅋ

 

작은 추억과

부푼 가슴과

작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오늘도 달린다.^^




건축과 영화 ④ - Metropolis,1927 (Mingu_2009 restoration)?

'건축과 영화' 시간을 통해 영화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관심이 생겨났고,

조금 더 찾아보고자 하는 마음에 블로그 글에 언급된 영화들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구했던 것이 Metropolis란 영화였다.

 

처음엔 최근 2001년도 version을 구하게 되었고, 이것 이외에도 더 많은 version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건축과 영화'에 참석했던 동생들과 함께 주말에 작업(?)과 더불어 학교에서 보내면서

짬을 내어 영상을 틀었다.

 

그 영상에 담긴 생소한 흑백의 대비와 그 분위기,

배우들의 과장된 몸짓, 표정에 사실 충격 아닌 충격을 받았고,

자막이 없어 원어를 들어야 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영상 자체의 힘에 빠져들었다.

 

마침 학교 수업중에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으로 배웠던 과장된 표정과 모습들을

실제 그 당시의 영상을 통해 접해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지금의 영화들에 비할 수 없는 다른 매력이 분명 있었다.

대사를 통해 내용을 파악하는 습관에 젖어든 지금의 나에게

다른 전달 통로가 차단된 채 표정과 행동으로 전달되어지는 내용은

단순히 듣고 이해하는 일차원적인 습득의 전달방식을 넘어

보며 느끼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유추의 과정을 통한 일종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마치 책을 읽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과정과 같이

시각적인 자극을 통한 새로운 사고의 과정은

더 영화에 빠져들게 하고 더 집중하게 한 것일지도...

 

물론 모든 영화를 그렇게 볼 수 있을꺼란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그런 힘을 느낄 수 있었고

오히려 언어의 담(?)이 이를 더 자연스럽게 도왔다.

사전에 영화에 대해 더 자세히 공부하고 봤더라면 나았을까,란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런 연유다. 

 

시간이 지나고

Metropolis에 대한 선생님의 글들과 설명들을 통해

더 많은 version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내가 본 것과 조금 다른 version인 Moroder판을

'건축과 영화' 시간에 다시 접하면서

또다른 색깔, 색채를 느낄 수 있었다.

 

내용에 대한 측면은 자막이 그간의 부족함을 채워주었지만

조금은 더 지루하게 느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조금 더 친숙하고 쉬운 음악과 배우의 모션과 교묘히 맞아 떨어지는 음악의 악센트는

완성도면을 더 높게 평가하게 해주긴 했지만 어딘가 모른 아쉬움이 남았다. 

 

어쩌면 나는 이 영화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원했다라기보다 

그 영상이 주는 자극에 의한 새로운 나의 version이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전에 처음 접했던 영상을 통해 내 머리속에 자리잡은 나의 version의 새로운 new version이랄까?

 

이 영화가 수많은 version들로 만들어 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영화가 이런 자극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은 아닐런지...

프리츠 랑 감독이 대단한 점이 이것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건축과의 연결고리로

과거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이 디스토피아적인 경우가 많고

최초의 SF영화라 불리워지는 이 영화에서도 그렇게 그려지고 있는데

지금의 우리가 그리는 미래와 또 다르지 않냐라는 이야기들이 다뤄졌지만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먼 훗날의 모습을 유토피아적이든, 디스토피아적이든, 또는 그아닌 다른 모습으로 상상하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해 지금 노력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것 같다.

앞으로의 사회와 시대상들을 예견하는 예언적 자세와 이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개입, 만들어 가고자하는 노력이 건축가에겐,

괜한 사명감에 불타오르는 건축가에겐 더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난 항상 이런 이상주의자인듯 하다.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해보라는 선배들의 비웃음 앞에서

여전히 하늘을 보며

그래도 난 웃을 거라는 무모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런 이상주의자...

 

건축은 그래서 내게 꿈이고 이상이며

과정상의 실패일 뿐 궁극의 성공이고

절대 실망이지 않고 희망이다.

 

- 장민구





건축과 영화 ⑤ - 행복의 건축, 그 마지막 중얼거림.

행복의 건축, 그 마지막 중얼거림입니다.

 

다섯번째 이야기를 마무리(?) 하지 못한채 이런저런 일들로 정신없이 보내다가

서울국제건축영화제를 한다는 이야기에 궁금함에 더하여 가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짧은 한숨과 함게 남겨진 숙제를 마무리 해봅니다.

 

1년을 예상했던 작은 여행이 조금 일찍(?) 마무리되어

다시 대구에 내려와 4학년 2학기를 지내다보니

지난 학기 조금 더 시간을 내어 더 많은 것들에 참여하지 못하고 내려옴에 못내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더욱이 좋은 프로그램들이나 가고픈 행사들이 생기노라면 그 아쉬움은 더욱 커지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학기라는 시간을 조금 다른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하며

듣고, 보고, 말하고, 배운 하나하나의 생활들이 돌이켜 바라보니 보약이었음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건축과 영화'는 제게 작은 꿈과 도전을 갖게 해줬음에 생각하면 흐믓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찌보면 척박한 지방(?)이라는 꼬리표는 시간적 제약이 사라진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더이상 의미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리도 지워지지 않는 어색함인지...

부족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픈 마음이, 함께 느끼고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

답답함을 넘어 강한 욕구로 솟구쳐 제게 작은 꿈이되어 도전하게 되는 듯 합니다.

 

좋은 선생님을 모시고 직접 함께 하는 시간을 갖고 싶지만

여력(?)이 되지 않기에 함께 마음모은 동생과 시작해볼까 합니다.

짧은 영어실력을 백분 살려 자막작업도 해보고,

추천해주신 좋은 영화들도 구해보며 포스터를 제작할 맘에 미소도 지어봅니다.

설계과제더미 속에서 헤엄치면서도 틈틈히 자막번역작업에 매달려도 보고,

영어 좀 한다는 녀석들에서 공갈협박(?)으로 일부 작업을 떠넘기기도 하면서

그렇게 힘을 모으며 하나하나 준비해 갑니다.(그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긴 하지만...)

 

가슴이 뛴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 행복이기에,

가슴이 뛰는 설계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기에,

지칠만큼 달려봅니다. 잠시 앉아 쉬고 다시 달리고자 끈을 고쳐 묶습니다.

 

마지막 학년을 준비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에 고민하면서도

꿈을 생각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걱정보다 앞선 즐거움을 찾고, 가슴 뜀을 경험하기에

행복이라 감히 이름합니다.

 

건축문화학교에서 느낀 애정(?)이

척박해질뻔한 마음을 뛸수 있게 해주었음에 감사드립니다.

 

소통의 장에서 베푸신 하나하나에 감사드리며

나 또한 또 하나의 소통의 통로이길 기대해봅니다.

 

마지막 글을 마무리하면

마지막일꺼 같아 미루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를

이제는 끝낼 때인거 같네요.

 

행복의 건축, 제겐 가슴떨림입니다.

강병국 선생님, 칭찬 감사드립니다.

책 선물해주신 홍선희 선생님 감사드립니다.

웃으며 반겨주신 신현승(?)님도 감사드려요~

 

행복하소서~~~


Posted by archita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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